[대림절 묵상] 2. 그날에 주가 와서
[대림절 묵상] 2. 그날에 주가 와서
말 3:16-17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말라기는 ‘나의 사자’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말아키’입니다. 말라기의 저작 시기는 아직도 논란이긴 하지만 스룹바벨 성전이 지어진 후 어느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70년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짓고 재건의 시기를 마무리하는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정황상 제사장들의 부정과 부패를 책망하는 내용을 볼 때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성전 건축과 성벽 건축을 마무리하고 예루살렘이 안정을 뒤찾는 시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정도 삶이 안정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옛 조상들의 타락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강력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해도 타락한 인간 안에 잠재된 죄성들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말라기는 꺼져가를 이스라엘의 촛불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주님께 돌아오라고 외칩니다.(3:7)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돌아가야 합니까?’ 되물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십일조와 봉헌물’(3:8)이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십일조의 신앙의 척도로만 이해하지만 구약 시대에는 십일조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삶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십일조가 드려지지 않는다면 결국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굶어가면서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는 제도가 무너지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제도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든다 한들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악하다면 제도는 필연적으로 악하게 사용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이스라엘이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스라엘을 향해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두 가지를 약속합니다. 하나는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며(3:16), 다른 하나는 ‘분별’입니다.(3:17)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세상은 두 부류의 사람들로 구분되었습니다.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며 십자가를 붙들며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을 구하는 자들과 여전히 의인인체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심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심판은 저주가 아닌 구분이며, 구별입니다. 마치 빛 아래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듯 십자가 아래서 사람들은 악인과 의인으로 구분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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