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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역사] 6) 단일 왕국시대(B.C.722-586)

그일라 2019.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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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역사] 6)단일 왕국시대(B.C.722-586)

 

남유다왕 히스기야가 다스릴 때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합니다.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가 죽은 715년에 유다 왕이 됩니다. 686년까지 약 30년 동안 통치합니다. 히스기야는 남유다에서 가장 거룩하고 믿음이 좋은 왕 중의 한 명입니다. 아마 그의 결말까지 포함한다면 다윗과 버금갈 정도로 경건하고 좋은 결망을 맺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마자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히스기야는 불신의 아버지 아하스가 닫았던 성전문을 열고 다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게 합니다. 제자장들과 성막에서 봉사하는 레위사람들에게 성전 정화를 명령합니다. 이 일로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찾아 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 이후 앗수르가 침략하여 위기에 빠집니다. 722년 살만에셀 5세와 사르곤 2세가 북왕국을 멸망시킵니다. 그후 20년이 지난 701년 왕이된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다시 유다를 공격해 옵니다. 히스기야는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라는 엄청난 조공을 바치지만 산헤립은 만족하지 못하고 쳐들어 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지하 수로를 만들어 예루살렘 안에 물길을 트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국 천사가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 18만명을 몰살시켰다고 열왕기 기자는 보고합니다. 전쟁의 승리로 교만해진 히스기야는 갑자기 아프지만 기도하여 15년을 연장 받는다. 회복을 축하하러온 바벨론 사신들에게 성전의 보물들을 보여주는 잘못을 범합니다. 이 일로 성전의 기물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집니다.(대하 36:18)

 

므낫세(697-642)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와 약 10년 정도의 공동 통치 기간을 거치고 686년 정식적인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죽자마자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으로 비판 받습니다.(왕하 21:2) 경건한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이런 악한 왕이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므낫세는 남유다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비판 받습니다. 자신이 직접 아세라 상을 만들어 성전 안에 두는 악을 행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살려두지 않았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므낫세의 악행을 계속하여 지적하고 보고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므낫세의 악행으로 인해 남유다도 멸망당할 것을 선언하십니다.(왕하 21:10-15) 앗수르 군대가 갑자기 남유다를 쳐들어와 므낫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역대기 기자는 비록 그가 악한 왕이었지만 포로생활을 하면서 회개했다고 말합니다.(대하 33:13)

 

아몬(642-640)

 

므낫세가 바벨론으로 끌려가자 므낫세의 아들 아몬이 남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는 부전자전이 되어 므낫세와 동일하게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합니다.(대하 33:22)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새겨진 주상에 제사를 드립니다. 아마 바알신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므낫세는 그나마 자신을 겸비하게 했지만 아몬은 악독하여 결코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학들이 그를 반역하여 죽이고 맙니다. 그의 통치 기간은 고작 2년에 불과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아몬을 대신하여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삼게 됩니다.

 

요시야(640-609)

 

히스기야 이후 요시야 왕은 이스라엘의 경건한 왕이었으며 그로 인해 왕성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히스기야처럼 요시야는 왕에 등극하자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그는 겨우 여덟살에 왕이 됩니다. 역대기 기자는 그가 처음부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대하 34:2)로 행했다고 말합니다. 통치 8년이 되던해 여호와를 구하기 시작했다는 표현을 보면 그 때 하나님의 인격적으로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통치 20년이 되던해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다른 왕들에 비하면 현저히 늦은 시기이기만 이 때 그의 나이가 고작 28세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세력을 얻을 후에 시작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는 성전을 수리하면서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아마도 모세오경으로 보입니다. 그때가 기원전 622년이었습니다. 586년에 멸망 당했기 때문에 멸망 당하기 고작 36년 전입니다. 요시야 이후 남유다는 급격히 멸망의 길로 떨어집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불이 꺼지기 직전 마지막 타오르는 장엄한 불꽃과 같았습니다.

 

율법을 사반이 낭독하자 요시야는 자신들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깨닫고 회개합니다.(왕하 22:13) 힐기야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여선지자 훌다를 찾가 여호와의 뜻을 묻습니다. 훌다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을 것을 예언합니다.

 

대하 34:23-25

23 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라 하시니라 2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하리니 25 이는 이 백성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그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의 노여움을 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노여움을 이 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요시야는 이 말을 듣고 모든 백성들을 모아 율법책을 낭독하고 언약을 확인시킵니다. 왕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로 맹세합니다. 요시야는 언약을 거행한 후 유다 안에 남겨진 우상들을 제거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합니다. 우상숭배에 사용된 집기들을 태우고, 우상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남색하는 자들의 집을 헐고, 자녀를 불사르는 악한 제사를 못하도록 막습니다. 심지어 솔로몬이 많은 후궁들을 위해 세웠던 이방 우상 제단들을 헐어버립니다. 400년 동안 왕궁 안에서 그러한 일들이 행해졌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북이스라엘 땅인 벧엘로 올라가 여로보암이 세운 벧엘의 단을 헐어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즐거워하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습성을 변하지 않았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1년 후인 627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유다의 선지자로 세우십니다. 그는 유다백성들에게 악한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라고 외칩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겉으로는 성공한 듯 보이지만 백성들의 마음은 여전히 악하고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들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진정으로 여호와께 돌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사야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났지만 유다 백성들이 온전히 여호와께 돌아가지 않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밖에서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셨습니다. 애굽과 앗수르가 급부상한 바벨론을 대적하여 힘을 모았습니다. 애굽와 바로 느고는 주전 609년에 앗수르를 돕기 위해 하란으로 군대를 이끌고 갑니다. 요시야는 선지자의 충고와 바로 느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바로를 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므깃도(신약에서는 아마겟돈)에 이릅니다. 결국 요시야는 변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살을 받아 그곳에서 죽음을 당합니다. 요시야는 남유다의 멸망의 마지노선과 같았습니다. 요시야의 죽음 이후 남유다는 멸망을 향해 급격히 추락합니다. 바벨론 포로시기를 남유다가 멸망한 586년부터 잡지 않고 609년으로 잡은 것은 포로 시기가 남유다의 완전한 멸망 이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아하스(B.C. 609)

 

요시아가 죽자 유다 사람들은 요시야의 넷째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운다.(대상 3:15) 원래 이름을 살룸이었지만 왕위로 올라가면서 여호아하스로 개명한다. 성경은 간략하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왕하 23:32)고 말합니다. 그의 나이 스무세 살이었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악함을 보고 유다 백성들에게 그가 포로로 끌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예언합니다.(렘 22:11-12)

 

예레미야 22:11-12

여호와께서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 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잡혀 간 곳에서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예언대로 여호아하스는 겨우 석달을 통치하고 바로 느고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끌고 가버립니다. 요엘 선지자는 앞으로 다가올 멸망의 환상을 보며 애통해 하지만 종말의 때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환상을 통해 보게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갈대아인들의 침략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걱정에 휩싸이지만 믿음으로 바로 서야할 것을 듣게 됩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멸망 당한다 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실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서야 하박국은 하나님에 모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하박국 3:17-19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여호야김(B.C.609-598)

 

느고는 여호아하스를 폐하고 그의 형인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웁니다. 요시야의 둘째 아들인 엘리아김은 여호야김이란 이름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그는 바로에게 매년 은 1000달란트와 금 한달라트를 조공으로 바칩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3:36-37

36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37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열왕기 기자와 역대기 기자는 여호야김에 대해 매우 간략한 소개만을 남깁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그의 이름을 종종 언급하며 그의 악이 결코 적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부끄러움 만큼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은 철저히 우상숭배 의지를 관철시킵니다. 그토록 선하고 거룩한 아버지 밑에서 그토록 악한 아들들이 태어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칩십 년 동안 포로로 잡혀가 있을 것을 예언합니다.(렘 25:11-12, 단 9장) 여호야김은 예언하는 예레미야에게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한다’(렘 26:8)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수많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차 포로(B.C. 605)

 

여호야김 재위 4년 해에 바벨론은 애굽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갈그미스에서 바로에게 치명타를 입히게 됩니다. 애굽은 그 후로 힘을 거의 상실하여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에 급하게 바벨론으로 돌아가 왕위를 물려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군대를 이끌고 가나안으로 찾아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항복을 받아 냅니다. 느부갓네살은 우상숭배에 젖어 하나님을 배신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의 막대기였습니다.

 

열왕기하 24:1-4

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4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다니엘서에 의하면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년 되던 해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둘러쌌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일년 가까이 포위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의 귀족이나 왕족의 자녀들을 불모로 잡아가고, 성전의 일부 그릇을 가지고 바벨론으로 돌아갑니다. 자신들의 신전에 그것들을 두었는데, 이것은 신들과의 싸움에서 자신들의 신이 이스라엘의 신을 이겼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삼상에도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법궤를 다곤 신전에 갔다놓은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니엘 1:1-2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여호야긴(B.C. 598-597)

-2차 바벨론 포로(B.C. 597)

 

여호야김이 죽자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그는 고작 3개월이란 짧은 기간동안 왕이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야긴도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렘 22:24-25) 597년 느부갓네살은 다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여호야긴과 수많은 관리들과 장인들을 데리고 바벨론으로 돌아갑니다.(왕하 24:10-16) 이 때 제사장이었던 에스겔도 포로로 잡혀갑니다. 에스겔은 593년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합니다. 여호야긴은 13년 동안 감옥에 있다 풀려나지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벨론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시드기야(B.C.597-586)

  -3차 포로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끌고간 대신 그의 삼촌이며 요시야의 세 번째 아들인 맛다니야를 왕위에 세웁니다.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꾼 다음 예루살렘을 다스리도록 허락합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마지막 왕으로서 17년 동안 통치합니다. 왕이 될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형제들과 동일하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대하 36:12) 행하는 왕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를 찾아가 바벨론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바벨론의 명을 거역하고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친바벨론파와 친애굽파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친애굽파였고, 시드기야도 애굽을 의지했습니다.(참조 렘 37:5-7) 격분한 느부갓네살은 대군을 이끌고 다시 예루살렘을 찾아옵니다. 이번에는 몇 사람만 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멸망시켜 버립니다. 그때가 주전 586년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애굽을 믿고 항복하지 않는 시드기야를 보며 2년 동안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합니다. 성읍의 양식은 동이 나서 굶주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결국 2년 뒤인 주전 586년 예루살렘의 성벽이 헐리고 예루살렘은 함락됩니다. 도망치는 시드기야를 바벨론 군사들이 쫓아가 무자비하게 학살합니다. 느부갓네살 앞에 선 시드기야는 그 자리에서 아들들의 죽임을 보고 자신의 눈을 잃게 됩니다. 놋 사슬에 묶여 일반 포로처럼 처참하게 바벨론까지 끌고 갑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던 시드기야는 결국 육신의 눈까지 상실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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