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장(James Chapter 1)
야고보서 James
야고보서 1장(James Chapter 1)
1. 본문 읽기
먼저 본문을 소리내어 읽으십시오. 가능한 2번 정도 읽기를 권합니다. 만약 설교자라면 5번 정도 읽기를 권합니다.
인사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1: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1: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야고보서 1장 구조분석
야고보서 1장은 네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짧지만 강력한 금언과 같은 내용들입니다. 인사(1절)를 한 다음, 믿음과 지혜의 관계를 언급하고(2-8절), 성도가 자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합니다.(9-11절) 시험 없는 삶은 없습니다. 성도는 시험을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12-18절) 마지막 야고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들음과 행함의 관계를 설명합니다.(19-27절) 인용된 헬라어는 특별한 출처가 없는 이상 the Nestle-Aland 28th를 사용하였습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1장을 나누었습니다.
- 1:1 인사
- 1:2-8 믿음과 지혜
- 1:9-11 자랑거리
- 1:12-18 시험과 인내
- 1:19-27 들음과 행함
1:1 인사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Ἰάκωβος θεοῦ καὶ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δοῦλος ταῖς δώδεκα φυλαῖς ταῖς ἐν τῇ διασπορᾷ χαίρειν.
[강해]
야고보는 먼저 자신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θεοῦ καὶ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의 종(δοῦλος)으로 소개합니다. 저자가 확실히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만약 주의 형제 야고보(막 6:3; 고전 15:7; 갈 1:19; 갈 2:11-14)라며 본문의 언급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종 야고보서가 에비온파적 성향을 가진 서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느 정도 성향은 보입니다. 하지만 유대인으로서 갖는 특정한 성향일 뿐입니다. 저자인 야고보는 자신을 하나님과 예수님의 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수신자는 흩어져(διασπορᾷ) 있는 열두 지파입니다. 이 표현은 굉장히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완전히 멸망했으며, 북이스라엘에 속한 지파들은 뿔뿔히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완전히 흩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완전하지 않음에도 ‘열두 지파’라는 표현은 부당해 보입니다. 저자인 야고보는 ‘열두 지파’를 언급함으로 완전성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온전한 정체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 분명합니다. 즉 이 편지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유대인 공동체에 보냈다고 해야 옳습니다.
1:2-8 믿음과 지혜
[강해]
야고보는 시험(πειρασμός)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당부합니다.(2절) 시험은 한 가지 종류가 아니라 ‘여러가지’입니다. 시험을 당하지 않도록 미리 연습하고 훈련해도 시험 자체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대처하기 힘듭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야고보는 놀랍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그 이유를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3절)으로 밝힙니다. 시험이란 단어는 실험 시도 재판 입증의 뜻을 가지고있습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시험이 올 때 우리가 가진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게 됩니다. 영어에서는 시험을 Test와 temptations으로 구분해 번역하기도 하지만 동일한 의미입니다. 시험은 나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시험이 때는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ὑπομονή)는 참고 기다린다는 뜻인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시험의 때는 내면을 살펴야 합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바른 것인지, 주님을 향한 삶이 거룩한지를 세밀하게 살펴 주님께 합당한 삶으로 계속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지혜가 부족하다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시험의 때는 인내가 필요하지만 지혜도 필요합니다. 마귀는 교활하여 우리를 어떻게 하든지 넘어지게 합니다. 성도는 비둘기처럼 순전할 뿐 아니라 뱀처럼 지혜로워야 합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야고보는 만약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다면 ‘하나님께 구하라’(5절)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이유는 먼저, 하나님은 지혜가 무궁하시며, 기꺼이 구하는 자들에게 지혜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5절)
하나님께 구할 때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은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구하는 자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자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의심의 기저(基底)에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기도자의 교만이 뒤섞여 있습니다.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의심은 결국 하나님이 아니 자신이 뭔가를 해결하려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들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신실함이 아니 요동치는 바다와 같이 신뢰할 수 없는 자신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야고보는 단호하게 이렇게 하나님을 의심하는 자들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7절)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의심 너머에 ‘두 마음’(8절)이 있다는 것을 야고보는 간파(看破)하고 있습니다. 두 마음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세상을 향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기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참된 지혜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은 세상의 그 어떤 지혜자나 사람보다 하나님의 계명이 참지혜인 것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천착(穿鑿)해야 합니다. 시험의 때에 요동하지 마십시오. 오직 여호와의 말씀에 더욱 집착하고 순종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시 1편)
1:9-11 자랑거리
[강해]
여기서 ‘낮은 형제(ἀδελφὸς)’는 가난한 사람이나 계급이 낮는 사람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누군가를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인맥도 없고, 명예도 없고, 돈과 권력도 없습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자들에게 ‘자기의 높음’(9절)을 자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높음’이란 뭘 말하는 걸까요? 10절에서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한 자가 마음에 생각하는 자랑은 ‘풀의 꽃’과 같은 자신의 부가 분명해 보입니다. 재물은 참으로 유용하고 쓸모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야고보는 부를 쌓기 위해 시간을 보내온 삶도 결국 ‘쇠잔(衰殘)’(11절) 것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낮은 형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 높아졌습니다. 부한 자는 자신의 허망한 삶에 대해 겸손해야 하고, 낮은 자는 자신의 높아짐을 감사해야 합니다. 야고보는 자랑 너머에 있는 모든 인생을 사랑하시고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1:12-18 시험과 인내
[강해]
다시 시험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1:2에서 언급한 동일한 단어(πειρασμός)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3절에 언급된 ‘시험(πειράζω)’과는 약간 다른 단어입니다. 하지만 ‘페리사조(πεῖρα)’라는 동일한 어근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는 아닙니다. ‘페이라스모스’가 재판에서의 증언의 성향이 강하다면, ‘페리사조(πεῖρα)’ 유혹에 대한 반응에 가깝습니다. 영어로 ‘Temptation’로 번역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완전히 상이한 다른 단어가 아님을 기억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시험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ㄱ. 생명의 면류관에 대한 약속
먼저 시련을 잘 견디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12절)을 허락하셨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어찌보면 야고보의 표현은 약간 모순적입니다. 왜냐하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만약 너희들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시험을 잘 견딜 것이며, 결국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로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ㄴ. 시험하지 않으시고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
야고보는 여기서 좀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시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험 당하지도 않으신다고 못박습니다.(13절)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억지를 부릅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욕심에 이끌려 선악과를 먹었음에도 모든 죄의 이유를 하나님께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야고보는 단호하게 하나님은 시험하지도 않고 시험 당하지도 않음을 분명히 합니다.
ㄷ. 시험은 자신 안의 탐욕 때문이다.
시험 당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의 때에 자신의 본성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4절에 좀더 주목해 봅시다. 우리는 이곳에서 죄가 가지는 성향을 발견합니다. 먼저 각 사람은 시험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시험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시험을 통해 그 사람의 정체가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야고보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14절) 되었다고 말합니다. ‘욕심(ἐπιθυμία)’은 자신 숨겨진 ‘갈망’ ‘정욕’을 말합니다. 평상시에 잘 드러나지 않다가 시험이 올 때 그 정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경건한 자가 아니라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자임을 스스로 시인하게 됩니다. ‘끌려’라는 헬라어 ‘엑셀코(ἐξέλκω)’는 자석에 쇠가루가 끌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탐욕은 점점 자라납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15절)
결론을 내려 봅시다. 시험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어떤 이는 인내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고, 어떤 이는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명백하니 ‘속지 말라’(16절)고 경고합니다. 욕심에 끌려가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죄를 죽여야 합니다. 야고보는 우리의 시각을 위에 계신 ‘빛들의 아버지’(17절)로 돌립니다. 진정한 좋은 것과 참된 선물은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17절 하) 11절과 비교해 봅시다. 세상의 것을 탐하는 자들은 허망하고 헛된 것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조직 하나님을 갈망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이들은 ‘진리의 말씀’(18절)으로 낳음을 입은 자들입니다. 무엇을 바라봅니까? 무엇을 기대합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 봅시다.
1:19-27 들음과 행함
[강해]
1장 마지막 부분은 진정한 말씀 들음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19-20절에서는 성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말하는 것과 성내는 것이 함께 사용된 것을 볼 때, 성급하게 판단하고 성을 내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성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20절)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성내는 것을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21절)과 연관 시킵니다. 아마도 성내는 것을 악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성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함으로 일어난 결과로 보입니다. 19절부터 27절까지의 내용은 성도의 언어생활에 대한 것입니다. 성냄은 악을 행함이며(21절), 듣기만 하는 자며(22절), 혀를 재갈 물리지 않는 것(26절)입니다.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22절)는 구절을 유의해 봅시다. 자신을 속이는 자가 누구일까요? 말은 번지르하지만 삶이 없는 이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지만 결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자가 아닙니다. 야고보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망각하는 자와 같다고 말합니다.(24절) 이곳에서 거울은 우리를 비추는 하나님의 계명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듣기만 하고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자는 망각하게 되고, 결국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이들은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주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말씀을 들으나 잘 간수하지 못함으로 새가 주워가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참된 경건은 먼저는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그 다음은 고아와 과부를 그들의 환난 가운데서 돌보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27절) 않는 것을 추가함으로 하나님의 앞에서의 정결을 개인의 경건과 동일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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