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고보서 3장(James Chapter 3)

그일라 2020. 6. 3.
반응형

야고보서 3장(James Chapter 3)

 

1. 본문 읽기

먼저 본문을 소리 내어 읽으십시오. 가능한 2번 정도 읽기를 권합니다. 만약 설교자라면 5번 정도 읽기를 권합니다.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3:5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3: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3: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3: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3: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위로부터 난 지혜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3: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3: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서 장 구조분석

 

3장은 1-12에서 말과 언행에 대해 언급하며, 13-18절까지는 참된 지혜는 하늘에서 오는 것임을 설명합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지혜는 앞부분과 관련된 것으로 언행과 관련이 있습니다. 땅에 속한 지혜는 귀신 것이며 악이라고 정의합니다. 반면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화평하게 하는 자’로 칭합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죽이고,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립니다.

 

3:1-12 그리스도인의 언행생활

3:13-18 위로부터 오는 지혜

 

3:1-12 그리스도인의 언행생활

 

[강해]

 

야고보는 언행(言行)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며 반복적으로 언급합니다. 불행하게 대단히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못된 언행이 교회 안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절에서 야고보는 선생 된 자들이 더 크 심판을 받게 되기에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선생이란 헬라어는 ‘디다칼로스(διδάσκαλος)’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이들을 말하며, 종종 율법교사와 랍비 등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유대교가 아닌 교회 안에서도 선생들은 유대교의 랍비나 교사들이 맡았던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것은 불가피하며 필수적입니다. 만약 교회에서 교사가 없다면 교회른 존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야고보는 교사 되는 것에 대해 주의를 줍니다. 아마도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교사가 됨으로 존경을 받으려는 분위기가 형성 된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의 교사를 진리를 가르치는 중대하고 막중한 사역을 감당합니다. 에베소서 4:11에 보면 ‘목사와 교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두 직분은 관사 없기 때문에 한 단어로 봅니다. 즉 ‘목사는 교사’라는 뜻입니다.

 

왜 교사가 많이 되지 말아야 하는가? 야고보는 몇 가지 비유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ㄱ. 사람은 실수가 많다.(2절)

가정 먼저 주의해야할 이유는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며 실수하기 때문입니다. 실수는 곧 통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자신 안에 있는 악한 생각과 탐욕을 제어해야 하는데 하지 못할 때 실수하게 됩니다. 잠언에 보면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잠 10“19)렵다고 말합니다. 그럼 지혜가 뭔가? 말을 제어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ㄴ. 말은 제어하기 어렵다.(2-8)

두 번째는 첫 번째의 이유를 좀더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말은 통제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타는 말은 제어하기 위해 재갈을 물립니다.(3절) 재갈을 통해 온 몸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배도 작은 키 하나로 광풍 가운데서도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혀도 작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은 아주 작은 불씨에서 시작됩니다. 작은 불을 통제하지 못할 때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혀가 바로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악한 혀에서 나오는 말을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른다고 말합니다. 그 불이 어디서 나올까요? 지옥 불에서 나옵니다.

야고보는 결론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선생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ㄷ. 혀의 이중성(9-12)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함께 나온다는 것입니다.(10절)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동시에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한 입으로 저주하고 동시에 찬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3:13-18 위로부터 오는 지혜

 

야고보는 언행의 문제를 지혜의 문제로 전환시킵니다. 13절의 ‘지혜와 총명’은 교사들이 가져야할 덕목입니다. 교사가 알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총명은 교사들이 갖추어야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두 가지 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의 지혜는 땅의 지혜이며, 또한 귀신의 지혜입니다.(15절) 다른 또 하나의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15, 17절) 지혜입니다. 다시 1:5로 돌아가 보면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렇다면 땅의 지혜, 정욕의 지혜, 귀신의 지혜는 어떤 것일까요? 그 특징에 있어서 당의 지혜는 ‘독한시기와 다툼’(14절)이 있고,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14절 하)하는 지혜입니다. 3:1-12까지의 내용을 빌려 온다면 땅의 지혜는 통제되지 않는 지혜이며, 지옥 불에서 나오는 탐욕스러운 지혜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굴복시키지 않는 악한 본성과 탐욕의 상태를 말합니다.

 

땅의 지혜는 분명한 특징은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말을 들어보면 솔깃하고 대단해 보이고, 세상에 없는 놀라운 지혜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혜의 끝,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철저히 타인과 이웃을 파괴시키거나 수단화 시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을 보십시오. 그곳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자는 악인의 꾀에 귀를 기울입니다. 악한 자들의 길을 걷고, 결국 오만한 자, 즉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가 되어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이것이 땅의 지혜의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위로부터 오는 지혜, 즉 하나님의 지혜의 특징이 뭘까요? 17-18절을 보십시오. 먼저 성결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참된 신자는 지혜를 구하지만 그보다 먼저 성결해야 합니다. 성결하지 않는 지혜는 악한 것입니다. 말을 잘하고, 설교를 잘하고, 기도를 잘하고, 능력도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지 못합니다. 악한 것이며, 귀신의 지혜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사단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지으신 것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혜를 들을 하와와 아담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는 화평과 관용, 양순과 긍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 없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저마다 특별한 의미들이 있지만 한 가지 주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타적(利他的)’입니다. 즉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이타적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사단으로부터 오는 지혜의 극명한 차이입니다.

 

3장의 결론은 화평입니다. 화평은 예수님의 궁극적인 사역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목시키기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에 나오는 팔복의 일곱번째 복이 화평의 복입니다.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지혜는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판단하고 차별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순결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둘째는 타인을 향해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외의 나머지는 다 거짓된 것들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