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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설교] 예수가 나시니라

그일라 2019.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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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설교] 예수가 나시니라

마태복음 1:1-17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설교]

 

1. 기억하시는 하나님

 

저는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족보를 읽을 때마다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시대를 기원전 20세기로 잡는다면 거의 2000년이 흘렀음에도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로 인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셨지만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은 다시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망 없는 인간들을 가운데 한 사람을 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는 것과 이름을 창대하게 하는 것, 그리고 복이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400년이 지났을 때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큰 민족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지구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할 만큼 창대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보내 주심으로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망각합니다. 필요하지 않으면 잊혀지고 무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망각하지 않으시고 기억하셨습니다. 결국 ‘때가 차매’ 아들을 보내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2. 지키시는 하나님

 

마태는 예수님의 오심을 설명하기 위해 200년이 넘는 기나긴 족보를 열거했습니다. 족보에 타나난 시대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간 것부터 시작하여 단 한 번도 평안한 날의 거의 없었습니다.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대가 끊길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 속에서 구원자로 오실 예수님의 조상들을 지키셨고, 선하게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세상이 요동치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때도 지키십니다. 상황을 보지 말고 상황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바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3. 성취하시는 하나님

 

마지막 한 가지 더 살펴봅시다. 그것은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성취라는 말에는 모든 우연과 사건과 사연들이 총체적으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뜻하지 않는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우연(偶然)’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우연입니다. 하지만 그 우연도 하나님의 섭리(攝理)입니다.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 앞에 망연자실하기도 하고, 아무런 의미 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나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생각합니다. 족보에 기록된 사람들의 이름만으로 모든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기록되지 않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연과 사연이 축적되어 역사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우연들이 모여 필연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나가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타락 이후 단 한 번도 이 계획을 생각하지 않거나 최소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늘 언제나 항상 죄 많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일하셨습니다. 기억하시고, 역사하시고, 성취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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